일기는 아닙니다. 픽션도 아닙니다. 무대와 서점과 생활을 오가며 차곡차곡 쌓인 은밀한 이야기들을 내어놓습니다. 주파수가 맞는 이가 꼭 나의 신호를 받게 되기를.
검은 티
언젠가 옷장에서 오래된 검은색 티를 찾은 적이 있다. 탄성 있지만 목이 다 늘어난 긴소매 상의였다. 본래는 두터운 면 소재였으나, 통과한 시간 탓인지 해질대로 해져있었다. 십여 년이 넘게 가지고 있다가 삼 년 전쯤 버렸다. 고등학교 때부터 입은 그 티는 튼튼해서 오래 입었고, 점점 닳은 이후에는 손이 가지 않아 내버려뒀다. 앞으로도 좀처럼 입지 않을 것 같아 결국엔 버렸다. 검은색 쫄쫄이 타이즈와 검은색 반바지들은 그보다 더 일찌감치 버렸다. 운동복도 아니고, 무용복도 아닌, 그렇다고 일상복은 더더욱 아닌 나의 수많던 검은색 옷들.
대학교 1학년. 과 학생 모두가 필수로 들어야하는 ‘움직임’이라는 수업이 있었다. 지하 연습실의 거대한 마룻바닥에 검은색 쫄쫄이들이 모여들었다. 검은색 레깅스, 검은색 반바지, 검은색 반팔, 검은색